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와이트 섬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칠왕국 시대에 와이트 섬에는 본래 주트족(유트족)이 세운 '위흐트와라(Wihtwara)'라는 독자적인 왕국이 존재했다. 이 왕국의 이름과 와이트 섬이라는 이름은 로마 시대에 이 섬을 웩티스(Vectis, 지레)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는데,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다른 민간어원을 제시한다. 위흐트가르(Wihtgar)라는 사람이 왕국의 초대 국왕인데, 위흐트와라라는 이름도 위흐트가르의 백성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.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위흐트가르가 스투프(Stuf)라는 자와 공동왕이었고, [[웨식스]]의 [[체르디치]]의 조카들이었다고 전해진다. [[베다]]의 『앵글인의 교회사』에선 그들이 512년부터 왕이었다고 하고,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534년에 [[킨리치]]에게 땅을 받았다고 한다. 다른 앵글로색슨 왕국들처럼 와이트 섬의 기독교화는 좀 늦었는데, 661년 [[머시아]]의 왕 울프헤레(Wulfhere)가 [[웨식스]]를 정벌하면서 이 섬을 빼앗았고, 속국이었던 [[서식스]]의 왕 애델웨알흐(Æðelwealh)에게 주어 와이트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. 하지만 울프헤레가 떠나자 추방되었던 [[캐드왈라]]가 군대를 모아 서식스를 침략해 애델웨알흐를 죽이고 섬이 다시 해방되자 그들은 [[오딘]]을 섬기는 [[게르만 신화]]로 돌아갔고 20여년 뒤 완전히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신앙을 유지했다. 마침내 7세기 후반 [[머시아]]와 [[웨식스]]의 경쟁자들을 모두 무찌르고 [[웨식스]]의 유일한 왕이 된 [[캐드왈라]]는 베다의 기록에 따라 곧 686년 [[서식스]]와 [[켄트(잉글랜드)|켄트]]를 정복하고 와이트 섬을 침략하여 멸망시켰다. 섬의 주민들은 모두 살해당했고, 마지막 군주인 아르왈드는 처형되었으며 도주했던 그의 두 형제도 본토에서 발각되어 주살당했다. 대신 아르왈드의 누이가 살아남았다고 하는데, 이름이 전해지지 않지만 그녀는 [[켄트 왕국|켄트]]의 왕 에그버트 1세(Ecgberht I, 에즈베르흐트)와 결혼하여 후대 왕 위흐트레드(Wihtred)를 낳아 모후가 되었다고 추측되는데, 위흐트레드는 [[알프레드 대왕]]의 가까운 조상이다.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와이트, version=116)] [[분류:잉글랜드의 주]][[분류: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]][[분류:영국의 섬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